기억이 가물가물하다만 1982년이었을게다.
그때 처음으로 학생 소프트웨어 경진대회같은게 열렸다.
컴퓨터라는 단어에 생소하던 시대니 만큼 언론들의 관심도 대단했다.
그때 대상인지 1등인지를 받은 아이가 있었는데,
뭐 병든 엄마를 살리기위해서 용궁으로 가는 게임을 만든 친구였다.
단지 까만 화면에 깜빡 깜빡이는 움직임따위였지만, 그건 신세계였다.
'엄마를 살리기위해'라는 단어에서 나는,
이거 사달라고 하면 먹히겠다는 생각을 했고,
혼자 상상의 나래(지금 뭔 상상을 했는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를 피면서 흐뭇해했다.
당시 초딩의 대부분은 주산학원을 다녔다.
주판이라고 아는가 모르겠는데,
나 초딩때는 이거 다 배워야 했다.
이때가 전자계산기가 처음 나올땐데,
아무래도 전자계산기의 등장으로 주판의 시대가 저물걸 예상한듯한 학원들은
벽마다, 주판이 전자계산기보다 빠르다는 포스터를 붙여놓곤 했었다.
뭐 더하기 빼기는....버튼 누르는 속도보다 저게 빠르긴 하다.
주산학원은 덤으로 암산이라는 걸 가르쳤다.
선생이 1+25+32+8을 말로 부르면-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1원이요, 이십오원이요, 삼십이원이요 식으로 끝에 꼭 원짜를 붙였다.-
주판을 좀 놓을줄 알면, 이 암산을 머리로만 하는게 아니라, 책상에 가상의 주판을 상상하며 손으로 튕기면 계산이 되었다.
뭐...그 당시는 물자가 부족해서, 그냥 맨바닥에도 상상력을 동원한 터치 기능이 가능했다....지금이야 터치폰 있어야하지만 --;
하여간 주산학원에서 내세우는 가장 큰 교육적 효과는 두뇌개발이었다.
이 때 양지의 주산학원과 함께 두뇌개발을 강조하던 분야는 상대적으로 음지였던 전자오락실이다. --;
하여간, 컴퓨터도 컴퓨터 판매상들 주장에 의하면 두뇌개발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지금처럼 컴퓨터 완제품이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 아니다....
그 대상인가 받은 친구 집을 티비가 비췄을때얼핏 컴퓨터라는걸 봤는데
지금도 기억난다 효성이라고 써져있었다.(당시 효성은 애플 2+ 호환기종을 만들고 있었을게다.)
이 기억을 뒤로....
그 다음 기억은 1984년이다.
둔촌동에도 컴퓨터 학원이 생겼다.
엄마를 졸라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다.
이때는 드디어 국내에서도, 아니 대기업에서도 컴퓨터가 막 양산되던 때였다.
우리의 가전3사도 모두 컴퓨터를 발매하기 시작했는데,
삼성의 SPC-1000
금성(지금의 엘지)의 FC-80, 100, 150 시리즈(서로 호환 안됐다 --;;)
그리고 대우의 아이큐 1000이었다.(참고로 금성의 FC-80도 MSX방식이었다.)
학원에서는 삼성 SPC-1000으로 수업을 했다.
컴퓨터라는게 배우면 금방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수 있을거 같았지만.
현실은 베이직과의 싸움이었다.
당시의 학원 교육이라는건, 칠판에 베이직 코드를 적어주면
그걸 타이핑 친다음(타이핑은 알아서 배워야 했고, 그래서 그때는 대부분 독수리였다.)
실행(기억으로 F5를 누르면 실행이 되었다.)하는 방식.
처음 그린건 원이었다.--;
10 screen 2
20 circle(120,80), 40
30 goto
run
뭐 대충 기억을 복기하자면 이런거였고,
그러면 화면에 원이 그려졌다.
음......그게 다다.
이때는 마우스니 GUI니 없던 시절이고, 도스보다도 예전으로서
컴퓨터를 키면 베이직 언어가 로드되고, 커서만 깜빡거렸다.
SPC-1000은 카세트 레코더 내장식이었는데,
이때는 카세트 레코더에 프로그램을 녹음했다.(스피커로 들으면 삐이이이이이하는 기계음이 들린다.)
이 즈음 나오기 시작한 더블데크또한 덕분에 인기품목이었다.
그게 있으면 대충.....프로그램을 구울수(?)있었으니까......
하여간, 난 사실 컴퓨터 배우면 게임을 좀 마음껏 할줄 알았는데,
이놈의 삼성컴은 칼라도 안나오고, 게임속 캐릭터도 한번 움직일때마다 화면이 일렁였다.
지금 생각나는 인상적인 게임이라곤 캥거루 뿐이다.
그 즈음.....그러니까 여름이 시작되기 전의 1985년
오락실에는, 전두환의 컴퓨터 육성책의 하나로, 컴퓨터를 들여놓기 시작했다.
지금의 공중 컴퓨터의 효시인데,나무 상자안에 컴퓨터 키보드만 돌충된 형태로...(당시는 바디+키보드 일체형)
이렇게 보급된 기종이 대우의 IQ-1000이었는데, 이건 삼성컴같은 자체규격(맞나?)이 아니라,
마이크로 소프트와 일본 아스키가 만든 일종의 수입 규격인 MSX방식이었다.
8비트 시절에는 미국,유럽의 애플 호환기와 일본및 몇몇 나라의 MSX방식의 싸움이었는데,
MSX는 상대적으로 속도가 빨랐고(애플은 1Mhz-기가가 아니다. MSX는 무려 3.58Mhz였다!!)
별도의 확장없이 16색의 칼라가 나왔으며, 티비와 연결이 가능해서 별도의 모니터 요금이 들지 않았다.
하여간,
당시 기준으로 최고의 멀티미디어 컴퓨터다 보니, 오락실에서 MSX로 베이직을 공부하는 녀석은 진정 얼빠진 놈이었고,
대부분 게임을 로드시켜 하고 있었다.
당시의 명작게임이라면
요술나무
양배추(세계최초의 코스프레 게임 --;;; 일지도..)
이얼 쿵후
등이었다.
이걸 보는 순간 삘이 왔다구나 할까?
내가 가야할 길은 삼성이 아니라 대우였다.
그리고 컴퓨터 구입은 의외로 싱거웠다.
1985년 뭔 바람이 불어서인지 가전제품을 다량구입
(우리집 최초의 칼라 티비, 냉장고, 컴퓨터가 동시에 들어왔다.)
하게 된 것이다.
티비는 당시 처음 시작한 스테레오(이게 뭔지도 몰랐다.) 및 음성다중(어지러웠다.) 방송을 지원하는 14인치.
냉장고도 당시로서는 처음인 영하 20도 급속냉각기능이 있는 아이씨 냉장고
그리고 아이큐 1000............
사양은 다음과 같다.
MSX BASIC V1.0 (16 KB)
- RAM: 8 KB minimum, most machines provided either 32K or 64K, machines with 128 KB exist
-
Video Display Processor: Texas Instruments TMS9918 family
- Video RAM: 16 KB
- Text modes: 40×24 and 32×24
- Resolution: 256×192 (16 colours) <=이거 중요하다. 당시로서는 최강....16색!!
- Sprites: 32, 1 colour, max 4 per horizontal line
- Sound chip: General Instrument AY-3-8910 <=3중화음 8옥타브를 지원하던....오디오 칩
베이직 프로그램 연마는, 아이큐 1000을 구입하는 즉시 잊었다.
엠에스엑스는 두가지 방법으로 게임이 가능했다.
롬팩이라고 하는 지금의 닌텐도 디에스같은 롬 칩을 끼우는 방식과
SPC-1000에서도 애용하던 카세트 테이프(데이터 레코더라고 했다..)를 쓰는 법....
롬팩은 넣자마자 게임이 되었지만, 비쌌다.
1985년 물가로 19800원에서 29800원까지.....
카세트 테이프 게임은 쌌다...3000원...
당시로서는 3000원도 꽤 큰돈.......
진정 부잣집 자제들은 롬팩을 박스로 가져다 놓고 했지만,
난 한달에 게임 테이프 한개 사기도 버거웠고,
덕분에 한우물만 팔 수 있게 되었다. --;;;
하여튼 첫번째 게임기 --;;; 아니 컴퓨터 아이큐 1000이었다.


